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_제 8권: 회심을 위한 마지막 싸움_제 9권: 세례를 받음(내용 요약/ 정리/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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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책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_제 8권: 회심을 위한 마지막 싸움_제 9권: 세례를 받음(내용 요약/ 정리/ 생각)

by 뀨뀨스토리 202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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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권: 회심을 위한 마지막 싸움

 어거스틴은 확실한 기독교의 진리에 몸과 마음을 바치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돈과 명예와 정욕’을 버릴 수 없어서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마음이 괴로웠던 어거스틴은 암브로시우스 감독을 보좌해 주고 있었던 사제, 심플리키아누스를 찾아갔다. 이때 심플리키아누스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였고 수사학자였던 빅토리누스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전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거스틴은 자신도 그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아서 고민하게 된다. 또한 어거스틴은 그 후 황제의 수행원인 폰티키아누스로부터 애굽의 수도사 안토니우스에 대한 이야기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자신들의 생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한 황제 수행원들의 회심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어거스틴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집의 정원에 들어가 어느 무화과나무 아래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아 울음보를 터뜨리고 기도했다.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며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선 것이다. 그 눈물은 슬픔의 감정이기도 했지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참회의 눈물이기도 했다.

“오 주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주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려 하나이까? 우리의 옛 죄악을 기억하지 마옵소서!”

그는 자신의 죄악에 꽉 붙들려 있는 것 같이 여겨져 계속해서 부르짖었다.

 이때 갑자기 이웃집에서 소녀인지 소년인지 알 수 없으나, “집어, 읽어라! 집어, 읽어라!”하는 어린아이의 노랫소리가 자꾸만 들려왔다. 그는 눈물을 억제하고 일어나 성경책을 펴서 첫눈에 들어오는 곳을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여겼다. 그가 펼친 구절은 로마서 13:13~14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의 의심의 구름에 밝은 빛처럼 심령 속에 확신이 비쳐왔고 곧바로 알뤼피우스에게 그 모든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어머니 모니카에게도 소식을 전한다. 어머니는 아주 기뻐했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제 9권: 세례를 받음

 어거스틴은 회심 후 교수직을 그만두고 수도생활을 하려고 결심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밀라노에서 동북쪽에 위치한 카씨키아쿰 별장에 가서 약 6개월 동안 말씀을 묵상하고 명상하며 책도 쓰고 세례를 받을 준비를 한다. 이때 그가 쓴 책들이 어거스틴의 초기 저서로 알려진 [회의론 반박], [행복한 삶], [질서론], [독백론] 등이다. 그 후 밀라노로 돌아가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제자 알리퓌우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암브로시우스 감독에게 가 세례를 받는다. 

 그는 세례를 받은 후 어머니와 아들 같이 살던 제자들과 함께 고향에 돌아가 수도생활을 하기로 결정한다. 오스티아라는 항구도시에 머무르며 배를 기다리던 중, 어머니 모니카와 “거룩한 사람들이 누리는 영원한 생명, 곧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고전2:9) 못하는 그 미래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생명의 물을 간절히 사모하는 중 신비체험을 한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어머니 모니카는 열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고향에 편안하게 돌아가시는 것이 더 좋겠다는 형의 말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육신은 아무 곳에나 묻어라고 말씀하신다. 금실 좋았던 아버지 무덤 옆에 자신의 묘 자리를 준비하셨던 어머니였지만 어머니의 심령의 변화였다. 어거스틴 일행은 그곳에 그녀의 시체를 묻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를 위해 기도할 때 선한 행위로 인해 기쁨으로 감사드리지만 어머니가 지은 죄를 위해 기도한다. 세례를 받은 뒤 죄를 쌓아 놓은 것이 혹시 있거든 사하여 달라는 기도다. 어머니로 하여금 그 남편 되는 육신의 아버지와 함께 평화 속에 거하게 해 달라 간구한다. 

 

 어거스틴의 회심의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빅토리누스를 본받을 마음이 불 일 듯하였으니...” 빅토리누스가 기독교인은 수사학 등 학예를 가르치지 못한다는 금령이 반포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학교를 버리는 그의 행동을 어거스틴은 용기라는 것보다도 부럽다고 여겼다. 하지만 자신을 표현하기를 ‘사악한 의지로 정욕이 일어나고, 정욕에 종노릇 하여 잘못된 습관이 생기고, 그 습관을 이기지 못해 끊기 어려운 죄성이 형성되었다’며 쇠사슬에 묶여 빅토리누스처럼 살 수 없다고 고백한다. 심플리키아누스를 통해 빅토리누스의 이 회심 이야기를 듣고, 폰티키아누스로부터 안토니우스와 황제 수행원들의 회심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들처럼 되고자 하여도 될 수 없음에 갈등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고자 하나, 우리 속에는 진정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음과 죄성이 어거스틴의 고백 속에 잘 묻어났다. 그의 고백 속에서 룻기가 생각났다. 나오미는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룐과 가론과 함께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이주했다. 두 아들을 모압 여인과 혼인시켜 모압 며느리를 얻는다. 살기 위해 갔으나 엘리멜렉도 두 아들도 죽고 만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양식을 주신다는 것을 듣고 돌아가고자 한다. 흉년도 양식을 주시는 분도 그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는 나오미.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다스리심이 없으면 흉년은 징계가 아니라 당연함이다. 살길은 하나님께만 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 속, 그의 백성이 되고자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을 ‘마라’라고 하라는 나오미의 모습이 생각난다. 

어거스틴도 그 갈등 속에서도 동일하게 느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다스림 없이는 우리 속에 선한 의지도, 동기도 나올 수 없다. 눈물을 흘리던 어거스틴의 그 모습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주님만 하실 수 있음을 인정하는 진정한 회심의 장면 같다. 우리의 영은 그분의 다스리심을 갈망하지만 우리의 육신은 그것을 못하게 한다는 갈라디아서 말씀이 떠오른다.

이 갈등 속 회심 사건 이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로마서 말씀으로 의심의 구름이 거두어진 어거스틴이 알뤼피우스에게 또 어머니에게 그 모든 이야기를 했다. 매우 기뻐하던 어머니 모니카의 장면에서 마음이 울컥했다. 밤낮으로 교회에서 간구하던 그녀의 모습이 다시금 생각났고 그 모든 과정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함께 느꼈기 때문이다. 모니카가 열병으로 죽어갈 때 어거스틴의 형이 고향에 묻고자 할 때 발끈했던 장면 또한 그녀가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통치하심의 풍년을 경험한 사람이라 느껴져..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갈망하는 어거스틴과 모니카의 마음이 내게도 깊이 새겨졌다.

 어거스틴과 모니카가 오스티아에서 경험한 신비체험은 무한한 풍요를 주시는 그 진리를, 그 지혜를 맛봄 그 자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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